조리희ㆍ포계지희
한라산(漢山)시로미 열매가 까맣게 익어 가는 계절.
시로미는 한라산 산허리 일대에 오밀조밀 분포하여, 바위를 핥고 땅을 기며 줄기 뻗는 가지마다에 조랑조랑 열매가 앙증스레 매달린 상록수(常綠樹)이다. 시로미의 열매가 환약같이 반들반들새까맣게 익으면, 즐거운 팔월이라 보름날이 온다.
오곡백과 풍성하게 휘늘어진 팔월에도 보름날이면, 한라산 기슭 둘레에 옹기종기 퍼져 사는 탐라(羅)섬 남녀노소들은 유서깊은 모흥혈(毛興穴=三姓穴)풀밭에 모여, 아득한 그 옛날 삼신인(神人)이 땅 속에서 불쑥 솟아나와 인간 세상을 펼쳤다는 제주(濟州)의 거룩한 자취를 기리면서, 희희낙락 노래하고 춤추고 놀이하고 즐긴다.
어멍도 아방이랑 씨어멍도 씨아방이랑 손에 손을 맞잡으면, 또한 웃녘거리 비바리는 알녘거리 큰아달과 어울려서 입에 입을 맞추어 노래부른다.
오돌또기 저기 춘향 논다.
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거나
둥그대당실 둥그대당실
여도당실 연자 버리고
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거나
한라산 허리엔 시러미 익은숭 만숭
서귀포 해녀는 바당에 든 만숭
둥그대당실 둥그대당실
여도당실 연자 버리고
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거나
노래는 점점 수많은 입이 모여 어울려서 목청을 돋우는 대합창이 한라산에 메아리치고, 다시금 남빛 푸른 바다로 물결을 타고 너울너울 흐른다. 흐르는 가락에는 그리움이 서렸다. 한 곡조 마무리면 되받아서 다른 가락이 펼쳐진다.
다리 송당 큰애기덜은
가죽감태 모흐로 쓰곡
피방에 지레 다 나간다
서목골에 큰애기덜은
돗베설 훌트레 다 나간다
성안골에 큰애기덜은
양태청데레 다 나간다
잇개 뒷개 고리방 딸은
건질 하여도 이날띠 건지
치멜 입어도 연반물 치메
신을 신어도 가박 창신
벨도대에 큰애기덜은
탕건청데레 다 나간다
함덕대에 큰애기덜은
신각 부비기로 다 나가곡
조천대에 큰애기덜은
망조청데레 다 나가곡
짐영 월정 큰애기덜은
잠수질 하레 다 나간다
애월 한림 큰애기덜은
구물 틀기 다 나가곡
도도 벡개 큰애기덜은
모자 틀기 다 나가곡
청수 닥마을 큰애기덜은
숱기 소리로 다 나간다
대정 근방 큰애기덜은
자리 짜기로 다 나간다
정의산 앞 큰애기덜은
질삼베로 다 나간다
구성진 선율에 절로 어깨에 바람이 돈다. 늙은이도 젊은이도 범벅으로 어울렸다. 한결같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웃는 얼굴, 얼굴, 얼굴들 남자 얼굴, 여자 얼굴, 서로 보고 웃는다. 속삭이듯 웃는다.
총각 녀석은 처녀의 엉덩판을 따라서 껑충껑충 돌아치고, 홀어미는 싱숭생숭해서 홀아비 낯짝을 흘낏거리면서 스리살짝 바람을 일으킨다. 즐거운 행락은 무르익어간다.
한바탕 가무가 끝나면, 이번에는 닭 붙잡기 놀이가 시작된다. 이 놀이를 포계지희(捕鷄之戱)라고 한다. 집집마다에서 들고 나온 닭을 훨훨 자유로이 놓아주었다가 요리조리 내빼는 놈을 맨손으로 붙잡는 놀이였다.
이 닭은, 붙잡으려는 사람을 피해 달아나다가 나중에는 기진맥진해서 기어이 붙잡히게 될 양이면 후루룩 날개치면서 물찌똥을 찍 깔긴다. 그 물찌똥이 사람 얼굴에 노대기칠을 하면 참으로 가관이다. 이런 꼴을 보는 구경꾼들은 배꼽을 움켜쥐고 크게 웃어댄다.
하지만, 얼굴에 물찌똥을 받은 총각도 오히려 싱글벙글 좋아한다. 또한 비바리(처녀)가 이런 꼴을 당했어도 무안해하기는커녕 아주 흐뭇해서 생글생글 웃는다. 이렇게 닭의 물찌똥을 얼굴에 맞은 총각 처녀는, 올 가을 안에 시집 장가를 가게 마련이라고 한다. 외톨이 홀어미나 홀아비라면 짝이 생기고, 금슬 좋은 내외라면 재물이 굴러들어올 좋은 운수라 했다.
닭 붙잡기 놀이는 이런 까닭에 성행하는 것이다. 이 놀이로 한바탕 웃고들 나면, 아녀자들은 그네 뛰고, 사내들은 편을 갈라 새끼를 꼬아서 동아줄을 만든다.
한라산을 사이에 두고 남쪽 북쪽 마을이 편을 짜서 줄다리기 승부를 겨루는 것이다. 남쪽 마을 사람들은 수출. 북쪽 마을 사람들은 암줄. 수술과 암줄의 머리통을 겹쳐서 비녀목을 찔러넣는다.
남쪽 편은 수출에 몰려들어 줄을 잡았다. 북쪽 편은 암줄에 달려들어 줄을 잡는다. 양쪽 편 대표자가 한중간 비녀목에 마주서서 제비를 뽑아 선후를 정한다.
북쪽이 먼저 당기는 제비를 뽑았다. 북쪽 편에서 신난다는 환호성이 왁짜하게 올랐다. 남쪽 편에서도 그에 질세라 더욱 힘찬 환호성을 터뜨린다. 대표자들이 똑같이 깃발을 치켜들자 경기는 시작되었다. 먼저 북쪽 편에서 힘을 써 당기면서 노래부른다.
“이어도 하라 이어도 하라(麗島여! 여도여!).”
다음에는 남쪽 편에서 힘 모아 당기면서 목청을 드높인다. “이어 이어 이어도 하라(여, 여, 여도여!).”
“이어 하멘 나 눈물 난다(여 하는 소리만 들어도 나는 눈물이 난다).”
“이어 말은 마랑근 가라(여도라는 말은 말고서 가려무나).”
“강남을 가는 해남을 보라(江南으로 가는 海南길을 보면).” 역시 뒤이어서,
“이어도가 반이엔 해라(여도가 절반이라네).”
당겼다가 끌리고, 끌렸다가 당기는 양편 힘의 균형이 좀처럼 승부를 가릴 수 없게 되면, 구경하던 늙은이랑 아이들까지 모두 자기편 동아줄에 매어달린다.
남쪽 편이 힘에 달려 한 발자국 끌려갔다. 그네 뛰던 남쪽 마을 아녀자들이 헐레벌떡 뛰어와서 줄을 끌어당긴다. 북쪽 편 여자들도 자기네 편에 붙었다. 힘과 힘이 팽팽하게 맞섰다.
어엿차!
어엇!
서로가 한꺼번에 힘을 내어 줄을 당겼다. 끌려당겨지지도 않는 줄을 기어코 당길 양으로 우쩍 힘을 모았다. 그 찰나, 어디메쯤동아줄이 뚝 끊어져 버렸다.
남쪽 편도 북쪽 편도 모두어 당겼던 힘에 와르르 엉덩방아를 찧고 쓰러졌다. 너무도 힘을 썼던 사람들은 벌렁 나뒹굴고 쓰러져서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아낙네가 발랑 자빠져서 가달을 버둥거리는 꼴은 우습지도 않았다. 온통 쓰러져 뒤범벅이 된 이런 꼴을 보는 사람은 정말 아니 웃을 수가 없었다. 아이도, 어른도, 늙은이도, 여자들도 웃음보를 터뜨린다. 쓰러졌던 사람도 벌떡 일어서기가 바쁘게 소리 내어 크게 웃어댔다.
웃음 소리, 웃음 소리, 웃음 소리들― 하늘과 땅과 산과 바다와…… 끝없는 공간을 흐르는 소리는 웃음뿐이었다.
탐라섬 사람들은 이 웃음 넘친 줄다리기놀이를 조리희(照里戱)라 부른다.
줄다리기는 단체경기 중에서도 상당히 규모가 큰 행사로서, 때로는 수만 명이 어울려 승부를 겨루는 대중적인 놀이였다. 이 경기가 어느 때부터 시작되었는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상당히 오랜 전통을 지닌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중부 이남 지방에서 성행했는데, 특히 영남지방에서는 정월 보름께 갈전(葛戰)이라고 해서 행하였으며, 무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된 경남 영산(靈山) 지방 줄다리기와 역시 무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된 충남 당진군 기지시(機池) 줄다리기가 유명하며, 전남 광산군 대촌면 칠석리(光山郡大村面漆石里) 속칭 옻돌마을에서 거행하는 고싸움놀이는 줄다리기의 변형으로서 장흥(長興), 강진(康津), 영암(靈岩) 등 전라남도 지방에서 정월 보름날에 행해졌다. 이 밖에 강원도 삼척(三陟)의 기줄다리기와 경기도 여주(驪州)·이천(利川)의 줄다리기, 충청북도 음성(陰城)· 무극(無極)의 장터 줄다리기 등이 유명했다. 제주도의 조리희(照里戱)는 지금은 없어졌다고 한다.
이 줄다리기를 삭전(索戰)이라고 해서 풍흉(豊凶)을 점치는 풍속이 있는데, 이긴 편에서 진 쪽의 줄을 차지해서 냇물의 보(洑)를 막는 데 요긴하게 쓰이게 되었으므로,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잘 짓게 된다는 이유로 이긴 편에 풍년이 든다고 한 것은 그럴싸한 말이다.
최남선(崔南善)은 《조선상식(朝鮮常識)》 풍속편(風俗篇)에서 “경기(畿湖) 호남(嶺南)의 풍속에, 정월 보름에 볏짚 혹은 칡으로 큰 줄을 수십 장(丈) 되게 꼬고 양쪽 머리에 수많은 작은 줄을 잡아매어 몇 개의 부락이 양편으로 나뉘어 이것을 끌어 승부를 가르고 이긴 편에 풍년이 온다고 말하는 일이 있으니 이것을 ‘줄다리기’라고 이른다”고 설명하였다.
중국에서는 줄다리기를 시구지희(施鉤之戱) 또는 발하지희(拔河之戱)라 부르며, 일찍이 초(楚)나라 때에 주전(戰)의 일종으로 시작되어 주(周)나라 때 놀이로서 행해졌고, 당(唐)나라 시절에는 매우 성행했다는 것이다.
일본에도 줄다리기 놀이가 있어 ‘스나히키 [綱引]’라 하는데, 원래 신령님께 제사지내는 신사(神事)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 줄다리기 경기는, 육상경기 가운데 잡종(種) 경기로서 인정되어, 벨기에의 안베르스에서 열린 제7회 국제올림픽에서도 행하여졌었는데, 그 후 중지되고 말았다.
참조 : 편싸움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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